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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어 간섭현상 줄이기, 이중언어자의 뇌에서 일어나는 일

by 자동차운전정보 2025. 6. 24.

외국어를 공부하다 보면 이상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분명히 한국어로 말하고 있는데 문장 어순이 어딘가 어색하고, 말끝에 붙는 조사나 어미가 영어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반대로 영어 문장을 말하려다가 무심결에 한국어식 사고방식이 그대로 적용돼버리는 경우도 흔하다. 많은 사람들이 외국어를 배우며 겪는 이런 이상한 간섭은 단순한 실수나 헷갈림이 아니다. 학습자 대부분이 겪는 이 현상은, 바로 '모국어 간섭현상' 또는 'L1 interference'라고 불리는 인지적 언어 전이의 한 유형이다.

 

모국어 간섭이란, 제2언어(외국어)를 습득하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모국어의 어휘, 문법, 억양, 발음, 문화적 언어 습관 등이 무의식적으로 외국어 표현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한다. 언어학적으로 매우 일반적인 현상이자 자연스러운 뇌 작용의 일부이며, 이중언어자가 된다는 것은 결국 이 간섭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조절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모국어 간섭이 왜 발생하는지, 이중언어자의 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실생활에서 이를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해 깊이 있게 살펴보고자 한다.

 

모국어 간섭이란 무엇인가 – 언어 간섭의 원리


모국어 간섭현상은 언어학적으로는 매우 보편적인 현상이다. 특히 두 언어의 구조가 다를수록 간섭은 더욱 빈번하게 나타난다. 한국어처럼 어순(SOV), 조사 사용, 맥락 중심 문화 등에서 영어와 큰 차이를 보이는 언어권의 학습자들은 영어를 배울 때 자주 모국어의 습관이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I very like it”과 같은 문장은 어휘는 영어지만 구조는 한국어에서 유래한 전형적인 간섭형 표현이다. 한국어에서는 “나는 그걸 아주 좋아해”라는 문장이 자연스럽지만, 영어에서는 “very”가 동사 앞에 오지 않으므로 문법적으로 어색해진다.이러한 간섭은 언어의 모든 층위에서 발생할 수 있다. 음운에서는 한국어에 존재하지 않는 [f], [v] 발음을 정확히 구사하지 못해 ‘fine’을 ‘파인’, ‘van’을 ‘반’으로 발음하기 쉽고, 억양에서는 문장 끝의 리듬을 한국어처럼 낮추는 버릇이 영어의 상승 억양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문법 간섭도 빈번하다. 한국어는 시제 변화에 둔감하고, 복문 구조보다 단문 중심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영어는 시제와 문장의 종속·병렬 관계를 명확히 구분한다. 이러한 차이가 외국어를 습득할 때 필연적으로 충돌을 유발하는 것이다. 또한 간섭은 단지 언어적 차이에서 오는 문제가 아니라, 사고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언어는 사고를 반영한다. 한국어는 감정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주어 생략을 통해 맥락에 의존하는 특성이 있지만, 영어는 명확한 주어, 시제, 논리 연결을 강조한다. 따라서 영어로 사고하는 뇌의 흐름과 한국어로 사고하는 흐름은 처음부터 접근 방식이 다르다. 이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 채 외국어 표현만 외운다면, 어느 순간 모국어 간섭으로 인해 언어 전체가 왜곡되거나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게 된다.이중언어자가 외국어를 사용할 때 단순히 한 언어만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두 언어가 동시에 뇌 속에서 활성화된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심리언어학자들과 신경과학자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최근 fMRI(기능적 자기공명영상)나 ERP(사건관련전위) 같은 뇌영상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 현상은 이제 단순한 가설을 넘어 객관적인 뇌 작동 패턴으로 확인되고 있다.

뇌는 특정 언어 하나를 사용할 때도 매우 복잡한 처리를 수행한다. 소리를 인식하고, 의미를 분석하며, 어법과 어순을 구성하고, 감정과 억양을 조절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언어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이중언어자의 경우, 뇌는 항상 양쪽 언어 시스템을 동시에 켜놓은 상태로 작동한다. 즉, 영어로 말하고 있어도 한국어 표현이 배경에서 떠오를 수 있고, 한국어로 말하면서도 영어 표현이 무의식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구조다. 이러한 언어 시스템의 동시 작동을 ‘공동 활성화(co-activation)’라고 부르며, 이는 이중언어 뇌의 핵심 작동 원리로 간주된다.

이 공동 활성화 상태는 단순히 언어 정보가 ‘둘 다 떠오른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중요한 점은 뇌가 이 두 언어 중 어느 것을 ‘선택’할지를 실시간으로 결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선택 과정은 결코 수동적인 것이 아니다. 뇌는 끊임없이 경쟁 상태에 있는 두 언어 신호 사이에서 불필요한 정보를 억제하고, 상황에 적합한 언어를 전면에 내세우는 조절 기능을 수행한다. 이때 작용하는 핵심 뇌 영역이 바로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전측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이다. 이 부위들은 집중력, 충돌 조정, 의사결정과 억제력 등 고차원적인 인지 제어 기능을 담당한다.

연구에 따르면 이중언어자는 단일언어 사용자에 비해 이 두 영역을 더 자주, 더 강하게 활성화시키며 언어를 처리한다. 언어 선택이 단순히 기억된 단어를 떠올리는 행위가 아니라, ‘지금 이 맥락에 가장 적합한 언어 표현은 무엇인가’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결정하는 고도 인지적 활동임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런 뇌의 복합적 작동 방식 덕분에 이중언어자는 언어 간 전환, 즉 코드 스위칭(code switching)이나 언어 간 억제(inhibition)에 유리한 인지적 이점을 지닌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처럼 복잡한 언어 제어 과정을 반복하게 되면, 때로는 과부하가 발생할 수 있다. 즉, 뇌는 빠르고 효율적인 표현을 생성하려고 하지만, 모국어가 지나치게 익숙하기 때문에 그 표현이 먼저 튀어나오거나 외국어 문장 안에 침투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이런 현상이 바로 모국어 간섭이다. 예를 들어, 영어로 “I’m tired”라고 말하고 싶을 때, 한국어의 “피곤해”라는 감각이 강하게 떠오르면, 문장 구조나 억양에서 한국어식 표현이 은연중에 반영되며 어색하거나 부정확한 결과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는 흔히 학습자의 실수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뇌가 두 언어 사이에서 정보를 조절하고 전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충돌 또는 과부하라고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

실제로 한 연구에서는 이중언어 화자들에게 시각 자극(예: 단어 그림)을 보여주고 반응 시간을 측정했을 때, 두 언어에 해당하는 단어가 동시에 떠오르는 경우 반응 시간이 느려지거나 오답률이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는 뇌가 하나의 자극에 대해 두 언어로 해석을 시도하며, 경쟁 신호를 억제하는 데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놀라운 점은 이러한 간섭과 충돌을 자주 경험할수록, 이중언어자의 뇌는 점점 더 효율적인 억제 전략을 개발하고, 상황에 따른 언어 전환을 더 유연하게 처리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간섭은 처음엔 방해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뇌의 언어 처리 능력을 더 넓고 깊게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또한 이중언어자의 뇌는 단지 언어 선택에 그치지 않고, 문화적 맥락까지도 언어와 함께 활성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한국어로 말할 때는 보다 간접적이고 정중한 표현을 떠올리는 반면, 영어로 말할 때는 보다 명확하고 직접적인 표현을 선택하게 된다. 이처럼 언어와 사고방식이 함께 작동하면서, 언어 자체가 하나의 세계관이 되며, 이중언어자는 두 세계 사이를 넘나들 수 있는 인지적 유연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이중언어자의 뇌는 두 언어를 완전히 분리해서 저장하거나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늘 함께 켜놓고 동시에 관리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더 높은 수준의 집중력, 억제력, 선택 능력을 요구하게 된다. 모국어 간섭은 이 복잡한 메커니즘 속에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부산물이며, 이중언어자라는 정체성 자체가 뇌에게 주어진 끊임없는 언어 게임의 결과인 셈이다. 따라서 간섭현상은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이중언어자의 뇌가 복잡한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운용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모국어 간섭을 줄이기 위한 실제 접근


모국어 간섭을 줄이기 위한 방법은 단순히 외국어를 더 많이 사용하거나, 모국어를 억누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언어 간섭은 단순한 양의 문제가 아니라 질의 문제이기 때문에, 보다 전략적인 사고와 훈련이 필요하다. 핵심은 두 언어 사이의 차이를 ‘무의식적으로 인식하는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도 두 언어의 구조적 차이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문장 구성 원리와 어법상의 차이를 이해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단순히 “이건 맞고, 저건 틀리다”는 식의 문법 학습을 넘어서, 왜 그렇게 말해야 하는지, 왜 그 구조가 자연스러운지를 반복적으로 경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청취와 읽기 활동은 매우 효과적이다. 문맥 속에서 자연스럽게 외국어 어순과 표현을 접하고 익숙해지는 것이, 간섭을 줄이는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상생활 속에서 언어 모드를 구분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된다. 예컨대 영어를 사용할 땐 머릿속에서 철저히 영어 어순과 사고로 문장을 조립하는 연습을 하고, 한국어를 쓸 땐 한국어답게 말하는 것. 이렇게 뇌가 언어별 ‘작동 규칙’을 구분하여 사용하는 훈련이 반복되면, 점차 간섭현상이 줄어들게 된다. 처음엔 의식적으로 해야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뇌는 언어 모드를 전환하는 자체 알고리즘을 갖추게 된다. 이 과정은 단기간에 완성되지 않지만, 꾸준히 인지적 통제를 강화하면 자연스럽게 언어 경계선이 선명해지고, 외국어의 정확성과 자연스러움도 함께 증가한다.

 

결론 – 간섭은 오히려 성장의 신호다

모국어 간섭현상은 언어학습을 하다 보면 누구나 마주치는 과정이며, 이를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 간섭은 뇌가 외국어를 단순히 표면적으로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깊이 있게 통합하고 재구성하려는 움직임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다. 언어는 단지 문법과 어휘의 집합이 아니라, 사고와 감정, 그리고 문화까지 아우르는 복합적인 시스템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곧 내 안의 기존 언어체계를 다시 조정하고, 더 넓은 사고의 틀을 수용하는 과정인 셈이다. 그 와중에 모국어와 외국어가 충돌하고 서로 영향을 주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 자체로 뇌가 유연하게 재구성되고 있다는 증거이며, 언어 습득이 단순 암기가 아닌 인지 확장의 여정임을 보여주는 지표다.

이중언어자의 뇌는 언어 간 경계를 절대적으로 설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두 언어를 동시에 활성화시킨 상태에서, 적절한 언어를 선택하고 필요에 따라 억제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러한 조절 능력은 단순한 언어기술을 넘어, 뇌 전체의 주의집중력, 작업기억, 전환능력 등 고차원적인 인지 능력과 직결된다. 그래서 모국어 간섭이 일어난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이 뇌의 이러한 기능을 실제로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며, 단순히 단일언어 사용자보다 더 복잡하고 정교한 사고를 하고 있다는 반증이 될 수 있다.

결국 언어 간섭은 실패나 퇴보의 신호가 아니라, 내 언어 습관이 외국어의 구조와 조우하면서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도기적 현상이다. 이 간섭이 어느 순간 줄어든다는 것은 단순히 실수를 덜 하게 됐다는 의미를 넘어, 뇌가 두 언어의 패턴을 구별하고 자동화시키는 능력을 획득했음을 의미한다. 즉, 간섭은 언어 학습의 끝이 아니라 중간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와도 같다. 언어를 배운다는 건 나의 정체성을 넓히는 일이며, 이 과정에서 충돌이나 혼란은 당연히 동반된다. 중요한 건 그것을 인내하고 넘어섰을 때 얻게 되는 인지적 자유와 표현의 확장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간섭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다. 간섭은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완벽하게 통제할 수도 없다. 그러나 학습자는 그 간섭이 어떤 상황에서 발생하는지를 인식하고, 이를 점차 조절할 수 있는 전략을 체득해나갈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조절 능력이 바로 이중언어자의 진짜 힘이다. 두 언어를 자유롭게 오가면서도, 각각의 언어를 그 언어답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 맥락에 맞게 사고방식을 전환하고, 필요한 언어를 적절하게 호출해낼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야말로 언어를 ‘소유’하는 사람이며, 언어를 통해 세상을 확장해나가는 진정한 의미의 이중언어자라 할 수 있다.

그러니 모국어 간섭현상이 나타난다고 해서 주눅 들거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것은 당신의 뇌가 지금 새로운 언어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확실한 신호이며, 더 복잡하고 정교한 언어 처리 능력을 개발하고 있다는 가장 정직한 증거다. 간섭을 단점으로만 보지 말고, 성장의 징후로 받아들이자. 언어란 결국 익숙함을 벗어나 타인의 세계로 다가가는 일이며, 그 과정에서 흔들리는 건 오히려 자연스럽고 건강한 변화의 증표일지 모른다.